步虛詞 이슬로 먹을 갈아 - 고병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12-18    조회 : 5722
 
  

        步虛詞                       이슬로 먹을 갈아

         高騈(唐)                                   고병(당)

         淸溪道士人不識                          청계산의 道士를 사람들은 모르지  

         上天下天鶴一隻                          하늘을 오르내릴 때 학을 타고 다닌다네

         洞門深鎖碧窓寒                          동굴문 굳게 닫고 차가운 창 아래서

         滴露硏朱點周易                          이슬로 붉은 먹 갈아 周易에 점을 찍네



또 눈입니다. 세찬 바람이 함께 불어 눈보라입니다. 하늘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데 댓돌도, 마루도 하얗습니다. 방 한 켠에 신문지를 깔고 섬돌에서 눈을 맞고 있던 신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신발을 들여 놓으니, 묘하게도 세상과 연결된 마지막 끈을 거두어들인 기분이 됩니다. ‘藏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북이의 별칭입니다. 툭하면 딱딱한 등껍데기 속에 여섯 가지, 머리와 네 발과 꼬리를 감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답니다. 절집에서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라는 뜻으로도 쓰고 있습니다. 신발마저 들여놓으니 이 말도 떠오릅니다.

눈 때문이건, 눈 덕분이건 기왕에 신발을 들여놓았으면 방울 이슬에 붉은 먹 갈아 周易에 점을 찍었으면 좋으련만, 귀는 한없이 길어져 지상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곤두서곤 합니다. 風雪夜歸人—눈보라치는 밤에 돌아올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차라리 이런 밤엔 긴 편지라도 써야 할까요?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는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