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 산중 - 왕유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11-01    조회 : 6568
  

      山中                                    산중

      王維(唐)                                      왕유(당)

         荊溪白石出                                   냇물 줄어 바닥 위로 흰 돌이 돋고

         天寒紅葉稀                                   날은 차져 붉은 단풍 성글어 가고……

         山路元無雨                                   산길에 비 온 자취 바이 없건만

         空翠濕人衣                                   비취빛 하늘에 사람 옷이 흠뻑 젖네



저만치 산꼭대기에서 시작하여 골을 타고 내리던 단풍의 물결이 절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길 떠날 차비를 차리는 누이의 모습 같습니다. 水落而石出, 가을에는 계곡물이 야위면서 물빛은 한결 투명해지고, 그러면 얼굴만 살짝 내밀고 있던 돌들이 몸까지, 뿌리까지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몸은 여위어가지만 눈빛은 더욱 깊어가는 수행자 같습니다.

여러 해 전 이맘때의 일입니다. 고은 시인, 리영희 선생, 소설가 김주영 선생 등 몇몇 어른들을 모신 답사팀에 끼어 피아골로, 섬진강가로 지리산 자락의 남도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리영희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가을이, 단풍이 산에만 있지 않음을 이번 여행에서 알았노라고 말머리를 여셨습니다. 이어 선생은 금빛으로 일렁이는 남도의 들녘, 성근 잎사귀마저 떨구어가며 오로지 푸른 하늘만을 배경으로 말갛게 익어가는 감, 그리고 한없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깊푸른 하늘 또한 우리의 가을을 수놓는 단풍이 아니겠는냐는 자신의 소회를 덤덤하게 풀어놓으셨습니다. 평소 알고 있던 선생의 명징한 논리와 이성 안에 넉넉한 서정이 함께 있음을 새삼스러워 하며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늘도 단풍입니다. 하늘 단풍이 하도 고와 그 아래 흰 옷을 입고 서면 쪽빛 물이 들 것만 같은 나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