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詠葵花 빗속의 해바라기 - 김안국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07-16    조회 : 4142
  

  

     雨中詠葵花                   빗속의 해바라기

          金安國                                   김안국

          松枝籬下小葵花                     솔가지 울 밑에 키 작은 해바라기

          意切傾陽奈雨何                     해 바라는 간절한 맘 비 내리니 어쩌랴!

          我自愛君來冒雨                     내 너를 사랑하여 비를 견디며 왔나니

          不知姚魏日邊多                     햇빛 속에 가득한 모란이야 정녕 알 바 없어라



노스님이 한 분 있습니다. 가을마다 긴 장대를 마련하여 당신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풋감을 따 햇살 밝은 마루 끝에 앉아 낱낱이 껍질을 벗겨 곶감을 만드십니다. 꿰미로 엮인 감들은 처마 밑 바람벽 위에서 차츰차츰 곶감이 되어 갑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카메라가 이걸 놓칠 리 없어 이 예비 곶감들은 가으내 모델 노릇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렇게 만든 곶감을 스님은 예닐곱 개씩, 여남은 개씩 방방이 나누어 주십니다.

며칠 전에는 노스님 방 앞을 지나는데 손짓해 부르십니다. 빙긋이 웃으시며 뒷짐에 감추셨던 부채, 무늬도 장식도 없이 한지만을 하얗게 바른 커다란 방구부채 하나를 건네주셨습니다. 받아들고 살펴보니 붓으로 손수 쓰신 글귀 두 줄이 세로로 박혀 있습니다. <世中一等詩書傳/天下萬條忠孝先>. 멋들어진 글귀도, 이른바 ‘배운’ 글씨도 아닙니다만, 글자들은 또박또박하고 글귀는 진부해서 차라리 소박합니다.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노스님과 마루 아래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데 禪院에서 수좌 한 사람이 건너왔습니다. 미리 일러둔 듯 노스님은 마루 위에 놓였던 까만 비닐봉지를 수좌에게 쥐어주며 “열다섯 개니까 한 자루씩 나누면 맞을게야.” 하십니다. 비닐봉지에는 자루만 보이는 부채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노스님이 해마다 거르지 않는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꽃 심고 가꾸기. 지난해에는 담장을 따라 해바라기만을 줄지어 심으시더니 올해는 담장 안팎이 한결 다양해졌습니다. 칸나, 맨드라미, 다알리아, 과꽃, 분꽃, 봉숭아, 금잔화, 해바라기 따위가 줄줄이 피고 있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거나 혹은 구근을 심은 뒤부터 노스님은 사뭇 바빠지십니다. 가물 때는 아침저녁으로 고무호스를 연결하거나 물뿌리개를 들고 물을 주는 일이 여러 날 이어집니다. 잡초를 뽑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비료를 살살 뿌리기도 하십니다. 꽃나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이제는 웃자람을 막기 위해 순을 따주기도 하고, 쓰러지지 않도록 대꼬챙이 지지대를 세우거나 줄을 늘여 묶어주기도 합니다. 꽃이 진 가을에도 할 일이 있습니다. 꽃씨를 받기도 하고 알뿌리는 거두어 상자에 담아 얼지 않게 보일러실에 보관하십니다. 꽃이 진 꽃대를 베어내고 뿌리를 캐내어 말끔히 정리하는 일도 노스님 몫입니다. 

“꽃은 왜 심으세요?” 실없는 질문을 던지면 “이쁘잖아.” 하십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하면 “재밌잖아.” 그러십니다. 자연 속에서 제멋대로 자란 꽃과 나무들은 싱싱합니다. 노스님의 손길로 자란 꽃들은 사랑스럽습니다. 장마 걷히기 전에 노스님의 해바라기가 꽃을 피울란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해바라기를 보며 정말 햇빛 속의 찬란한 모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는지도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