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意 여름날 - 소순흠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07-01    조회 : 3931
  

        夏意                            여름날

       蘇舜欽(宋)                            소순흠(송)

        別院深深夏簟淸                       別院 깊어 대자리 시원도 하이

        石榴開遍透簾明                       드리운 발 너머로는 환한 석류꽃

        松陰滿地日當午                       솔 그림자 마당 가득 바야흐로 한낮인데

        夢覺流鶯時一聲                       낮잠결에 아스라한 꾀꼬리 소리



장마입니다. 비안개가 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산과 절을 숨겼다 내놓았다 합니다. 숨바꼭질을 하자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심심하면 한 줄금 비를 뿌리곤 합니다.

이맘때쯤이면 초록 일색일 듯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석류꽃이 불을 밝히고, 능소화가 여름 하늘을 향해 주황빛 나팔을 불며, 자귀나무가 여인네 가슴에 달린 코사지처럼 보드라운 연분홍 꽃을 피워올리는 것이 이즈음입니다. 

능소화는 어린 날 맑은 여름 아침 하얀 모래 마당 위에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후두둑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탓인지 흐리고 비오는 여름날에는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는데, 담장 너머 건너다보이는 모습이 초록 바다에 뜬 돛배같이 선명해 좋습니다. 자귀나무꽃은 아무래도 맑은 하늘이 좋습니다. 저렇게 털이 젖어 뭉친 모습은 흡사 비에 젖은 애완견입니다. 석류꽃을 보면 淸道 어느 고택에서 본 정원 이름이 생각납니다. 百榴園― 백 그루 석류가 자라는 정원, 꽃이 피면 장관이기는 하겠는데 굳이 그리 하고 싶은 염은 일지 않습니다.  

땡볕을 핑계로 꾀를 부리다가 며칠째 마당의 풀을 뽑고 있습니다. 비가 지나갈 때면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 성가시기도 하지만, 그럴 때 망연히 순한 빗발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너른 파초 잎에 후두기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맛이 있습니다. 여러 해째 풀과 씨름하다 보니 이제는 풀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삽니다. 손바닥만한 마당 하나를 대충 건사하고 살려해도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하물며 세상일이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마는 어쩌면 불볕더위를 예비하라는 자연의 배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만일 그렇다면, 쉼 없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장마야말로 忙中閑이요, 달콤한 휴식이요, 용도가 정해진 충전이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