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者 기와장이 - 매요신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4-08-01    조회 : 3436
  

        陶者                        기와장이

       梅堯臣(宋)                        매요신(송)

            陶盡門前土                   기와 굽느라 문 앞의 흙을 모두 쓰고도

            屋上無片瓦                   지붕에는 기와 조각 하나 없건만

            十指不沾泥                   열 손가락에 진흙 한 점 묻히지 않은 사람

            鱗鱗居大厦                   으리으리 커다란 기와집에 산다네



새벽예불 오가는 길에 두꺼비들을 만납니다. 주먹만한 두꺼비들이 으스름 그늘에서 정물처럼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치열한 생존이 응축된 두꺼비들의 이 정지도 아침이면 없던 일처럼 말끔히 사라집니다. 밤마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사냥을 되풀이하는 두꺼비들이 낮 동안에는 어디서, 어떻게 이 무더위를 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아침에는 지렁이들이 온 몸에 흙 뒤발을 한 채 어렵사리 땅 위를 기어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이렇게 지상으로 기어나온 지렁이들은 한낮이면 마른 삭정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주검이 되어 있기 십상입니다. 왜 죽음이 기다리는 지상으로 아침마다 꾸역꾸역 지렁이들이 올라오는지를 생물학적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혹 언제나 축축이 젖은 몸을 한번쯤은 뽀송뽀송하게 말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평생을 땅 속에서 살아 햇빛과 바람과 태양이 그리운 지렁이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여행을 결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름 하늘을 떠가는 뭉게구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아시는지요? 햇발이 서서히 퍼지는 아침나절, 절 안쪽 깊숙한 골짜기에서 구름은 만들어집니다. 생솔가지 태우는 연기처럼 뭉글뭉글 하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하늘과 맞닿은 산 능선을 벗어나면 그대로 몽실몽실한 구름덩이가 됩니다. 홀린 듯 그 모습을 바라본 뒤로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은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으리란 착각을 합니다. 어쩌면 뭉게구름은 더위에 지친 여름산이 토해내는 하얀 숨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롱나무가 열기 뿜는 태양에 저항이라도 하듯 꽃망울들을 마구 터트리고 있습니다. 잔물결도 일지 않는 지친 초록의 바다에 뜬 진분홍 돛단배입니다. 왜 배롱나무꽃은 한낮일수록 한결 선명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녁이면 신화 같은 달이 뜹니다. 어느 철이나 달이 동녘에서 처음 떠오를 때면 제 몸과 주위에 붉은 기를 띠고 있습니다. 이윽고 중천에 가까워질수록 그 붉은 기운은 탈색되고 달은 점점 투명하고 맑아집니다. 그러나 한여름의 달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그 충혈된, 불온한, 열기 가득한 붉은 빛을 거두지 않습니다. 이런 달빛 아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치 신화처럼.

열 손가락에 진흙 한 점 묻히지 않으면서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달과 두꺼비와 지렁이와 구름과 배롱나무를 친구삼아 여름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선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제 집에 얹지도 못할 기와를 굽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