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대둔사(大芚寺)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4-05-15    조회 : 3013
  
박물관에서는 지난 4월 26일과 5월 10일 두 차례 구미시에 있는 사찰 대둔사에 다녀왔습니다. 총무원에서 의뢰한 각 교구별 말사조사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기도 하지만 박물관 직원들이 잠깐 가벼운 답사를 다녀온다는 기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흥선스님을 비롯하여 전 직원이 단체로 갔었는데, 마침 대둔사 주지스님이 안 계셨기 때문에 아쉽게도 사찰 성보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흥선스님께서 절 입구에 있는 성파대사비(性波大師碑)의 비문을 탁본하는 동안 저희는 대웅전을 시작으로 응진전과 삼성각에 있는 유물들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대웅전과 응진전 구석구석을 촬영하고 불화를 비롯하여 소조십육나한상 등 뛰어난 유물을 실견하면서 깨달았던 점은 과거 공부하면서 단체 또는 개인적으로 다닌 답사는 양과 질 어느 부분도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응진전의 소조나한상들은 인물조각으로서 각 존자가 지니는 개성과 특징을 적절하게 묘사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흙으로 상을 조성한 뒤 상의 표면을 채색으로 보충하여 사실적인 존자들의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표정은 대체로 근엄한 편이고 자세 역시 자유스럽기보다는 정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3나한인 가나가바라타자(迦諾迦釐囉墮闍)존자가 머리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만이 특이할 뿐입니다.
한편 그 날 점심 공양시간에 대둔사 후원 보살님이 차려주신 정갈한 식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오후 4시까지 많은 유물 조사를 마칠 즈음 바람이 잦아 여의치 않았던 스님의 탁본 작업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마침 명부전의 지장보살을 비롯한 시왕상들과 대웅전에 새로 모신 신중탱화가 5월 2일 점안식을 앞두고 흰 천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김천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 대둔사에 갔을 때 저희는 점안식을 마치고 공개된 대웅전의 신중탱화와 명부전의 불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명부전의 상들은 10년전에 여주의 목아불교박물관에서 제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부전 내 중수기와 한 노보살님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상, 금강역사상 등은 10년 동안 빛을 못보고 있다가 이번에 비로소 공개된 것입니다. 그 노보살님은 이 명부전의 상들에 얽힌 꿈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하루는 보살님이 웬 예쁜 새끼돼지 한 마리와 무독귀왕으로 보이는 사람이 절을 투덜투덜 절을 내려가고 있는데 지장보살님이 명부전에서 친히 나와 그들을 만류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는 꿈을 꾸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의 그 새끼돼지는 도명존자라고 생각하신다면서.
  

대웅전의 후불탱을 보호하고 있는 유리 액자에 길게 한 줄로 금 간 이유도 들었습니다. 대둔사가 자리한 복우산(伏牛山) 인근은 좋은 돌이 많아 채석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폭파를 하게 되면 절이 흔들릴 정도라고 합니다. 과거 어느 때 이 복우산 건너편 가까운 곳에서 채석업자들이 돌을 채취하고 있는데, 당시 주지스님께서 폭파 때문에 절이 흔들리니 다른 곳에서 돌 구하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작업을 진행했고, 결국 그 때의 폭발 진동으로 인해 탱화를 덮고 있던 유리가 길게 갈라졌다고 합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곳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것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그런 일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입니다.
슬라이드와 디지털 이미지 수백장과 적어온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써 보았습니다. 저는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전적으로 신봉하지는 않습니다. ‘본만큼 알게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구미시의 한 외진 사찰 속에도 이 정도의 수준급 문화재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소양이 부족한 저로서는 이제야 비로소 보았기 때문에 알게 된 정보입니다.

한재원(학예연구원)

사진1) 대둔사 대웅전
사진2) 대둔사 응진전 제3나한상
사진3) 대둔사 명부전 지장보살상, 도명존자, 무독귀왕, 목각탱, 업경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