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증촌리 용화사 석불상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11-27    조회 : 2344
문경에서 곧장 남쪽으로 난 3번 국도는 함창을 거쳐 바로 상주에 닿는 옛길을 넓힌 것이다. 곧 과거보러 오가는 선비와 서울을 오가는 물자들이 드나들던 영남대로의 한 구간이다. 이렇게 중요한 길목이었던 만큼 오고가는 발길도 많았을 테고 쉬어가는 길손도 많았으리라. 길손에게도 마을사람들에게도 의지가 되었을 부처상이 길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함창 읍내에서 경북선 철길을 넘자마자 오른쪽 길로 증촌리 마을 뒤쪽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암자 같은 절집 용화사가 나온다. 마당에 들어서면 감나무 뒤쪽에 흩어진 석재들이며 짝이 맞지 않는 지붕돌과 몸돌을 어설프게 얹어놓은 석탑 등이 오랜 옛적부터 절이 있어왔던 자리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용화사의 본전인 미륵전에는 석불 두 구를 모셔놓았다. 한 분은 입상이고 한 분은 좌상이어서 서로 키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건만 사람들은 ‘미륵님’이라 부르며 지성으로 받든다.
  

입상은 1.98m의 판이 그대로 광배를 이룬 가운데에 도독하게 선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많이 닳아져 광배의 세부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데, 육계가 분명한 머리에 얼굴은 다소 긴 편이고 손은 앞쪽으로 모으되 아래 위로 놓여 있다. 둥근 어깨 아래로 통견의 옷자락이 가슴께에서 U자 모양을 이루며 다소 도식적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무릎 아래는 파묻혀서 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퇴화된 인상의 이 입상은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보물 제 1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옆에 나란히 모셔진 좌상은 보물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신 자체는 1.68m이지만 8각 연화대좌 위에 우뚝 앉아 위용을 갖추고 있다. 머리의 육계 부분이 깨어지고 광배는 잃어버린 상태지만 비교적 제모습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다. 원만한 얼굴에 벌어진 어깨, 불룩한 가슴, 한손은 무릎 위에 손바락이 위로 보이게 놓여 약합이 올려져 있으며 한 손은 땅을 향한 항마인을 하고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약합만 아니라면 석굴암 본존불의 자세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셈이다. 다리 아래로 흘러내린 상현좌의 옷주름이 몸체와는 떨어져 대좌 위에 새겨져 있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어깨가 벌어져 강건한 모습이지만 풍만하고 유연하다기보다는 딱딱하게 긴장한 듯한 경직성이 느껴진다.
불신을 받친 연화대좌는 8세기 무렵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하대는 엎어진 겹연꽃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중대에는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잎 하나하나에 다시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매우 화려하다. 중대석이 높직하지 않아 안정감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위엄 있는 신라 하대의 불상이다.

  

목수현(직지성보박물관 학예실장)


사진1) 용화대 대웅전 내부
사진2) 용화사 석불입상(보물 제118호)
사진3) 용화사 석불좌상(보물 제1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