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대승사(1)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1-24    조회 : 2432
  
시방세계 부처가 머문다는 사불산(四佛山, 912m)은 공덕봉을 중심으로 봉우리들이 감싸안은 형국을 이루고 있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북면의 골짜기를 따라 난 길을 한참 들어가다 전두리에서 중턱으로 오르면 천오백 년 고찰 대승사가 있다. '四佛山 大乘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키 큰 전나무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골 깊은 문경 산속의 한가로움을 한껏 맛보게 한다.
대승사는 김룡사를 창건한 운달조사가 그보다 한해 앞서 진평왕 9년(587)에 개산했다고도 하고, 이름을 모르는 도승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다만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의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조에 이야기가 전한다.
"죽령 동쪽 100여 리 지점에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진평왕 9년 갑신년에 홀연히 사방에 불상을 새긴 사면 10자 정도 되는 큰 돌이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로부터 산의 꼭대기에 내려왔다. 왕이 이 사실을 듣고 수레를 타고 가서 예경하고 그 바위 곁에 절을 지어 대승사로 하였으며, 「법화경」을 독송하는 비구를 청하여 절을 주관케 하고 그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돌에 절하며 향불〔香火〕이 끊이지 않게 하였다. 이 산을 역덕산(亦德山) 또는 사불산(四佛山)이라 하였고 비구가 죽어서 장사지냈더니 그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었다."
신라가 불교를 공식으로 인정한 것이 그로부터 겨우 60년 전의 일이니 왕명에 따라 세워진 매우 개척적인 절로 왕의 관심이 그만큼 각별한 곳이었던 듯하다.
대승사는 조선 후기의 상주읍지에도 기록이 전하는 만큼, 1,500년 동안 맥을 이어온 고찰이지만 실상 대부분의 전각들은 현대에 다시 세워져 그다지 고찰다운 맛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깎아지른 사불산 봉우리들이 감싸안은 자리만은 매우 포근하다. 다만 요즘음에 일고 있는 절 구역 넓히기 바람이 이곳 대승사에도 불어닥쳐 예전의 아담한 맛을 잃어가고 있다.
  
좀 경사진 곳에 단을 쌓고 터를 닦았기 때문에 절이 들어설 때에는 자연히 올려보게 되며 뒤에 병풍처럼 둘러친 산세와 기분 좋은 청신한 소나무들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계단 정면에는 꽃창살이 예쁜 대웅전이 있는데, 오래된 맛은 덜하지만 기단부 면석에 연꽃이 피어나는 형상을 민화처럼 소박하게 아로새긴 옛 돌이 끼어 있어 옛날의 화사했을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면모도 드러내 보여준다. 서쪽의 요사채는 제법 세월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사적기에는 대웅전 서쪽 승당을 1604년과 1689년에 중창했다고 하니 근 400년에 가까운 유서를 지니고 있다. 동쪽 요사채는 H자 모양의 건물로 선당(禪堂)이며 보물 제991호로 지정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모시고 있다. 이 보살상은 15세기 후반에 조성되어 1516년에 개금되었는데 근엄한 표정과 당당한 체구를 지녔으나 화려한 보관을 쓰고 가슴에서부터 배, 무릎에 걸쳐 영락장식이 화려하다. 선방 안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보기가 어렵다.
요사를 지나 동북쪽에 치우쳐 명부전·극락전·응진전·산신각 들을 갖추고 있다. 1922년과 1956년에 있었던 화재가 대승사의 전각들을 많이 쓰러뜨렸는데 명부전·극락전·산신각만이 17세기 후반 건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명부전에는 모두 목조로 만들어진 지장보살상과 금강역사·시왕상 등이 죽은 사람이 간다는 명부의 세계가 무섭지 않은 곳으로 여겨질 만큼 친근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새로 세운 응진전에는 나한상 500구를 모셨는데 소박하지만 저마다 생기 있는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어 나한 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대승사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대승사는 한때 상적암·반야암 등 아홉 암자를 거느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고려 말 나옹 혜륵선사(1320∼1376)가 출가하여 득도한 곳으로 알려진 묘적암과 윤필암·보현암 등 세 암자만이 남아 있다. 대승사를 있게 한 사방불석은 높이 3m 폭 1m로 윤필암 위쪽의 바위에 기둥처럼 굳건히 서 있다. 윤필암의 사불전에는 따로 부처를 모시지 않고 사불산 정상의 바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유리로 창을 마련해놓았다. 다만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는 불상들의 흔적은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다 마모되어 사방불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림) 위로부터 일주문 / 응진전 오백나한 / 윤필암 전경

목수현(직지성보박물관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