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대적광전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0-13    조회 : 2210
  
대적광전은 축대도 낮고 기둥도 짧아 지붕에 눌리는 감이 있다. 어쩌면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점을 고려하여 일부러 그렇게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탑의 탱주처럼 중간중간 기둥돌을 세운 가구식 축대는 낮은 대로 4면에 잘 남아 있다. 네 층의 앞면 계단도 소맷돌이 신라의 고식이며 축대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이 축대와 계단은 신라시대까지 그 만든 시기가 올라갈 것 같다. 옆면과 뒷면은 덤벙주초를 놓고 정면은 네모지게 깎은 주춧돌을 놓았는데 양쪽 모서리의 초석 두개만 다른 것보다 높게 놓은 것이 특이하다.
대적광전 안으로 들어서면 그 크기가 사람을 압도하는 석조비로자나불상이 단좌하고 있다. 앉은키의 높이가 251cm, 머리의 높이만 70cm에 이른다. 석굴암 본존불에 버금가는 크기이다. 이렇게 크다보니 생겨난 이야기가 전한다.
이 불상을 불당골이라는 거창의 한 마을에서 만들어 옮겨올 때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쩔쩔매고 있는데 한 노승이 나타나더니 등에 업고 마구 달리더란다. 그런데 그만 수도암 입구에 다다른 노승은 칡넝쿨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노승이 불상을 내려놓은 뒤 산신을 불러, “부처님을 모셔가는데 칡넝쿨이 웬말이냐? 앞으로는 절 주위에 일체 칡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라”고 호통을 치고 사라졌더란다. 그 뒤로 지금까지 수도암 근처에는 칡이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불상은 크기만이 아니라 조각수법도 상당하다. 얼굴은 친근감을 주거나 종교적 이상미를 느끼게 하지는 않지만 앞에 서는 사람이 자세를 바로잡게 되는 근엄한 불격을 지녔다. 옷주름은 시원시원하면서도 규칙적인 반복을 피해 자연스럽다. 왼손은 손목과 팔이 구분이 안될 정도이긴 하지만 지권인을 한 손 모습도 크기를 생각하면 퍽 사실적이다. 가장 멋진 부분은 왼쪽 어깨 뒤로 척 넘어간 법의자락이다. 금세 팔락하고 뒤집힐 듯 생생하면서 큰 몸짓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맵시가 있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앞뒤 무릎의 폭이 너무 좁아 불안정해 보이고, 상체의 훌륭한 균형이 무릎에서부터 흔들리고 있기도 하다.
광배는 남아 있지 않고, 대좌는 팔각연화좌이다. 팔각의 하대석은 열여섯 잎의 복련을 새겼고, 그 위에 각 면에 안상을 새긴 팔각의 중대석이 놓였으며, 다시 그 위에 앙련을 새긴 상대석이 불상을 받치고 있다. 상대석 앞면에는 연잎 대신 귀면인지 용두인지가 새겨져 있다고 하나 불단에 가려 확인할 수는 없다.
이 불상 앞에 서면 아득한 정적에 전염이 된다. 보물 제307호다.

흥선(직지성보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