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 피워 올리는 침묵의 꽃, 예불(5)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2-23    조회 : 2276
  
범종은 절에서 쓰는 종을 말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범종각에 걸린 큰 종을 가리킨다. 아침예불 때 28번 종을 울리는 것은 욕계(欲界)의 6천(天), 색계(色界)의 18천, 무색계(無色界)의 4천, 합하여 28천의 하늘나라 중생들이 들으라는 것이고, 저녁예불 때 서른세 번 치는 것은 서른세번째의 하늘, 33천의 천상세계에까지 그 소리가 들리라는 뜻이다.
종과 종소리에 담긴 뜻을 에밀레종, 곧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종명(鐘銘)은 이렇게 풀고 있다.

무릇 지극히 완전한 진리는 형상 밖의 만물에도 두루 미치므로 보려 해도 능히 그 근원을 볼 수 없으며, 참된 진리의 위대한 소리는 천지간에 울리므로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방편으로 가설을 세워 세 가지 진리의 길을 통해 오묘한 이치를 보게 하고 신종(神鍾)을 내어 달아 온 진리를 포함한 둥근소리, 일승원음(一乘圓音)을 깨닫게 한다. ……(종은) 안이 비어 있어 능히 울리되 그 소리에 다함이 없고, 무거워 가볍게 움직일 수 없어 그 몸체를 들어 올릴 수도 없으니……. 모양은 마치 묏부리처럼 우뚝하고 소리는 흡사 용의 울음과 같아서, 위로는 산마루 하늘까지 사무쳐 울려퍼지고 아래로는 지옥을 지난 깊은 곳까지 또렷이 잠긴다.

범종은 덩치가 크지만 그 소리는 미묘하고 민감하다. 같은 범종이라도 치는 사람에 따라 그 소리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 종에 익숙한, 노련한 귀를 가진 스님이라야 종이 가진 소리를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다. 범종소리에는 정확히 계절과 날씨와 치는 사람의 감정이 담겨 있다. 그만큼 미묘하고 민감하게 변화한다. 겨울에는 특히 조심스럽다. 얼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단번에 크게 울리면 종이 깨어지기 쉽다. 때문에 겨울에 종을 칠 때는 처음에는 살살 달래듯 가볍게 치다가 차츰 소리를 높여 제 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범종소리는 적당한 습기가 있을 때라야 울림이 좋고 멀리 퍼진다. 한 줄기 소나기가 걷힌 여름날 저녁,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스님이 치는 범종이라면 단 하나의 소리로 연주하는 장엄한 음악을 기대해도 좋다.
  
스물여덟 번 범종이 울리고 나면 법당에서 예불이 시작된다. 먼저 범종소리를 받아 법당 안의 작은 종을 크고 성근 소리부터 작고 잦은 소리로 한 번 내린 뒤 다섯 망치를 치면, 창불(창불)하는 스님이나 부전스님이 오분향례(五分香禮)를 선창한다. 이어서 예불에 참석한 모든 대중이 함께 예불문을 염송하며 부전스님의 목탁 또는 경쇠 소리에 맞추어 여덟 번 큰절을 한다. 다음에는 발원문을 낭독하거나 행선축원을 하는 순서가 뒤따른다. 이것이 끝나면 모든 대중이 법당 왼쪽에 마련된 신중단(神衆壇)을 향하여 돌아서서 반배한 뒤 역시 반배로 대중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예불이 끝난다.
오분향례란 향을 살라 부처님께 공양하는 예식이다. 향을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다섯가지 공덕에 비유하여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다섯 가지 향을 온 누리의 한량없는 삼보에 공향한다는 내용이 이때 염송하는 글귀에 들어 있다. 예불에서는 도입부가 된다.

흥 선 (직지성보박물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