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엄산 성주사 대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탑본(崇嚴山 聖住寺 大朗慧和尙 白月&\\\#33862;光塔碑 榻本)
통일신라 890년 / 2015년 채탁


종이에 먹
족자 319.0×164.0 비문 260.0×152.0


  보령 성주사터 낭혜화상 무염無染(801~888)의 탑비(국보 제8호)를 2015년에 탑본한 것이다.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일으킨 무염 스님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다. 전체 높이가 4.55m에 달해 신라 비석 가운데 가장 클 뿐 아니라, 이수&\\\#34733;首와 귀부龜趺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은 최고의 수준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비문에는 특히 진골이던 낭혜화상의 가문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 육두품의 신분으로 낮아지는 대목도 나타나 있어, 당시 신라골품제도의 연구 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글은 신라 최고의 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 ~ ?)이 지었고, 글씨는 해서체로 알려진 최인연崔仁&\\\#28215;이 썼다. 글자 수가 무려 5,120자나 되는 장문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사산비명은 최치원이 지은 비문 가운데 신라의 불교사를 비롯하여 한문학사 · 사상사 등 여러 면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은 네 편을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이르는 것이다. 낭혜화상탑비를 비롯, 지리산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국보 제47호), 경주 초월산대숭복사비初月山大崇福寺碑, 문경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국보 제315호)가 그것이다.
  『황악산 직지사 사적』에는 절의 역사와 더불어 <전우영건殿宇營建>, <산암山庵>, <영자대사당명影子大師堂名>이라는 제목 아래 전각 및 산내 암자 현황, 그리고 직지사에 진영이나 부도가 있는 선사 16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이들 가운데 맨 처음으로 성주산 무염국사 혜연聖住山無染國師慧然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능여조사, 등곡 학조화상, 사명당 홍제존자, 모운당 진언대사, 지원당 명례화상 등 직지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사들의 존명이 적혀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성주산문을 여신 무염 스님과 직지사는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단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