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 종-전체(開運寺 鐘)
1712년



왼쪽) 106.1×40.8cm
오른쪽) 106.1×40.6cm


개운사에서 보관하고 있던 이 종은 개운사내의 중앙승가대학이 김포로 옮기면서 함께 이전되었다. 명문 첫 구절인 󰡐崇禎紀元八十三年 壬辰四月日…󰡑을 통해 1712년에 주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용뉴는 쌍룡이 복잡하게 몸체를 엉켜 종고리를 만들고, 약간 솟은 천판에 입상대를 갖춘 종신은 아래로 갈수록 완만하게 벌어지는 형태이다. 표면은 상대 위치에 원형 범자가 돌아가고 종복에 사각형의 연곽과 보살상과 사천왕이 있을 뿐 하대나 당좌는 없다. 그러나 이런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듯 입상대의 연꽃잎을 바람에 날리는 꽃잎같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 표현하였다. 보살상 밑에는 사천왕으로 짐작되는 무인상이 등장하고 있다. 사천왕이 등장하는 예는 통일신라종에서 고묘지光明寺 종과 고려시대의 김위상 소장 종, 시카우미진자志賀海神社 종에서 볼 수 있을만큼 그 예가 드물며 조선시대 역시 엔쯔지圓通寺 소장과 개운사 종 두 점뿐이다. 개운사 종의 사천왕은 칼을 팔뚝 위에 가로로 올려 놓고 합장을 하고 있다. 보살상과 천왕은 지문판의 새김이 얕아 종 표면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선의 표현은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섬세한 조각기법은 3구의 보살상에서도 적용되었지만 나머지 1구의 보살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선이 도드라지고 투박하게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