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등사 종-전체(縣燈寺 鐘)
1619년



83.8×60.8cm


현등사에 전하는 이 종은 본래 봉선사 종으로 제작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현등사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종신에는 󰡐奉先寺鐘銘幷序󰡑를 시작으로 세조를 위해 정희왕후와 예종이 세운 봉선사가 임진왜란 때 훼손되자 1613년에 법당을 중수하고 1617년에는 삼세상三世像을 조성하였으나 종이 없어 1618년에 권선문을 돌려 시주를 받아 1619년에 주성했다는 내용과 시주 내역, 그리고 시주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명문을 쓴 천보天宝 스님은 종 제작에 힘쓴 화주인데, 종 형태와 문양, 종에 쓴 명문 등의 유사성을 고려하면 고견사 종(1630년)과 보광사 종(1634년)을 주성한 설봉 천보雪峰天寶와 동일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종과 중국종 형식이 혼합된 현등사종은 두 마리의 용이 몸통을 틀어 고리를 만든 용뉴에 천판은 둥글게 솟고 종신은 하대로 갈수록 완만하게 벌어져 있으며, 종신에는 보살상과 당좌는 없고 굵은 횡대를 중심으로 상대, 연곽, 중대, 명문, 하대로 이어진다. 상대를 두른 연판무늬, 연곽대의 당초무늬, 중대의 보상화당초무늬, 하대의 파도무늬 등 조선 전기 해인사종의 문양을 연상시키면서 중대와 하대 위에 당초무늬와 앙련모양의 연판무늬를 덧붙여 변형하였다. 하대의 파도무늬 역시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가 아닌 넘실대는 물결 속에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로 변화되었다.